생장 - 발까를로스

여정 날짜 : 2023.01.14.(토) 14:00~17:00
걸은 시간 : 2시간 27분
걸은 거리 : 12.7km
누적 거리 : 12.7km

프롤로그

이 여정을 선택한 과정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도피처로 정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 많이 알아 본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많은 정보들의 축적은 이 도전을 방해할 빌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내가 하루에 2~30km씩 10kg의 가방을 매고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있는지만 테스트해봤을 뿐. 대전에서 세종까지 40여km를 걸으며 완전히 방전이 되었던 나는 하루에 40km 이하만 걷는 나만의 코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이 여행의 비행기표를 끊기 전에 준비한 유일한 것이었다.

생장

순례길의 첫 출발지다운 웅장한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골 간이역 같은, 춘천의 김유정역 같은 조그마한 역사를 나오면서 내 보폭의 크기를 새롭게 정돈할 수 있었다. 오히려 번화한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면, 나는 마음이 더 분주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순례자 사무소 가는 길

낯선 그 도시에 첫 발을 내딛고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면서 낯설고도 정감있는 시골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 나아갔다. 맞는 길인지 아닌지 살펴가며.

순례자 여권의 발급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지 잠깐 고민했지만, 오는 동안 기차에서 먹은 군것질로 대신하고 바로 떠날 이곳 생장을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앙증맞은 어느 시골 마을의 한적한 점심시간. 발걸음은 낯설었지만, 경쾌하였다. 아직 어깨의 짐은 괴나리봇짐만한 무게로만 촐랑이고 있었다.

드디어 문을 연 순례자 사무소.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순례자 여권에 첫 도장을 찍고, 가리비를 받으며 나의 순례길은 시작되었다.

여정의 시작

마치 닐 암스트롱의 첫 발과 같은 위대한 도약처럼 나의 여정을 오롯이 기록하기로 했다.

이 대장정을 난 잘 끝마칠 수 있을까? 자전거 해안선 일주와는 사뭇 다른 이 낯선 길에선 나는 완주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있어도 완주를 해낼 나일 것은 알지만, 그 길이 덜 괴롭고 덜 힘들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이 길을 완주할 수 있기를..

낯선 이정표에 방향을 잡고, 낯선 표지석에 발을 모으며 나의 이 길의 의식을 치르며 걷는 즐거움을 가미한다.

겨울철이라 폐쇄된 나폴레옹 산맥은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첫날 일반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 오히려 체력을 안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갓길이 거의 없는 구간이 있어 겁이 나긴 했지만, 순례자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그런지 차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가 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순례길의 수많은 배려, 배려, 배려를 느꼈다.

해는 슬쩍 기울어졌고, 발까를로스에 첫 번째 알베르게가 있다는 말을 순례자 사무소에서 들은지라 알베르게를 찾아야 했다.

발까를로스의 첫 알베르게

알베르게라는 숙소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카페나 블로그의 글로는 실감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숙소를 찾아가는 길. 구글맵과 어플을 사용해가면서 위치를 추적하며 숙소를 찾아갔으나, GPS 위치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는지 좌회전, 우회전이 헷갈리기 시작하며 여러 차례 길을 헤맸다. 그리고 이런 내가 답답했는지 저 멀리서 어떤 할아버지가 숙소의 위치를 알려주셨다.

입구가 꽁꽁 숨겨진 알베르게를 기어이 찾아내고 짐정리를 했다. 먼저 와 있던 한 사람. 그 유일한 사람이 한국인! 첫날부터 이 낯선 타국에서 만난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

짐정리를 대강 마치고 주변 마켓에서 저녁거리,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고, 주전부리와 맥주를 사 왔다. 나의 카미노가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일기 작성 후 취침. 첫 날 밤은 부산스럽지도 낯설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깊어져 갔다.

1일차 숙소 정보

- 발까를로스 공립 알베르게

그날 DIARY 갑자기 시작된 일정이다. 오후의 두세 시간 정도도 가만히 생장에 있지 못했다. 걷고 싶었고 머물기 싫었다. 이곳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문은 열렸을까 고민도 됐지만 그냥 출발했다. 12시 넘어 생장 도착. 14시 순례길 사무소 오픈. 14시 30분경 출발. 이곳에 도착한 것은 16시 50분경 두 시간 여를 더 걸어왔다. 11km 2시간. 평소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40km정도 걷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걸어가 보자. 지구는 둥그니까.
외국어를 했으면 어땠을까 했는데, 막상 스페인에 오니 영어마저 무용지물이었다. 맨땅에 헤딩인 날이 더 많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내딛은 첫 발. 마지막 날에 난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는지. 파이팅 해 보자. 안녕? 안녕히! 모두에게 그렇게 빠르게 스쳐가고 기억되고 잊히길. 어린왕자를 생장에 오는 길에 다 읽어버린 것처럼.